대학생활은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가을 우리 교원대생, 특히 4학년 학생들은 대학생활의 마지막 관문인 임용고사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원대생 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대학생들은 이 가을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비로소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것이며, 여러분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새로운 생명들을 낳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70년 혹은 80년 동안의 삶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까 잠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선 ‘육체가 필요한 것들'(physical needs)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을 가져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음식과 물질들을 가질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고 자식들을 부양해야 되는 위치가 되면 경제는 더욱 더 우리의 삶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그 다음에 우리는 '사회적인 유대관계'(social needs)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외로움을 느낀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가족들과 식사하며 이야기하고,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족/친지/동료/친구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어울리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사회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며, 결국에는 외로움과 고독감으로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할 모든 조건을 갖추었을까요?
인간은 영혼(spirit 혹은 soul)을 가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spiritual needs)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 ‘삶의 의미’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삶을 마친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졸업하기 전, 아직 학교에 있을 때에 신앙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과연 ‘내게 신앙이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신앙을 가질 것인가’하는 문제들입니다.
대학에서는 교양이나 전공과정에서 인문/사회학이나 과학/공학에 대해서 폭넓게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에 대해 고민해보고, 잘 알고 있는 부모나 선생님, 혹은 선후배나 친구들이 주위에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일찍 가질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신앙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지 않은 다음에야 신앙 없이 평생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과연 눈부신 과학/기술의 시대에 그리고 풍요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신앙은 현재와 미래의 인류의 삶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케케묵은 구시대의 산물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나는 믿습니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류문화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솟아 있는 신앙은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그리고 인류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영혼의 안식을 위해, 우리 삶의 의미를 위해, 이 땅에서 우리가 행복을 깨닫기 위해 신앙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신앙은 현재와 미래의 세계역사 흐름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영혼은 ‘왜 이 세계와 나는 존재하는가’를 궁금해 합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궁극적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다면 과연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고 자며, 자손을 남기고 개체는 소멸하는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하여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이 이 세계를 그리고 스스로의 영혼과 몸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우리가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부조리'라고 합니다. 신앙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우리의 삶의 부조리는 해소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BC 5,6세기에 중부 인도 지방에서 탄생한 싯다르타가 깨달은 가르침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나는 불교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본래 불성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욕심과 번뇌로 인해 자신과 이 세계를 바로 보지 못하므로 이러한 욕심과 번뇌를 수행과 경전에 의지하여 씻어 버린다면 우리는 참 나와 참 세계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본래의 불성을 가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유대지방에서 탄생한 예수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은 창조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간 마음속에는 교만과 자만이 생겨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자식을 낳아 키웠는데 자식이 부모를 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멀어지기를 원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창조주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 외부로부터 오는 태양에너지가 없다면 이 세계와 생명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창조자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가? 그리고, 나의 존재와 이 세계의 의미를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에 의해 깨닫느냐, 아니면 신의 사랑과 은총에 의지하여 깨닫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구원과 깨달음이 안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밖으로부터 오는가’의 차이일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계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음으로써,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졸업하기 전에, 혹은 졸업하고 나서도 여러분들의 존재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알아보는 노력을 하기를 권합니다. 그 진리들은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며,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교원대생들은 앞으로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직업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통하여 이 세계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구함으로서 앞으로 여러분들은 보다 의미있는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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